5천 원짜리 커피는 입장료일 뿐이다, 현대인의 '공간 빈곤'과 공간 비즈니스

 얼마 전, 내 본업인 인테리어 설계 작업을 하다가 유독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함을 느꼈을 때의 일입니다. 결국 사무실 책상을 벗어나 노트북을 챙겨 들고 동네 외곽에 있는 거대한 대형 베이커리 카페로 향했습니다. 5천 원이 넘는 비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결제한 뒤, 콘센트가 있는 넓은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죠.

한참 작업을 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넓은 카페 안은 저처럼 노트북을 펴고 일을 하거나 태블릿으로 인강을 듣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이어폰을 꽂고 각자의 모니터에 집중하는 풍경. 문득 씁쓸한 의문이 스쳤습니다. "우리는 지금 커피의 맛을 소비하러 온 걸까, 아니면 이 쾌적한 '공간'에 머무르기 위한 입장료를 내고 있는 걸까?"

'아주 쉬운 다큐멘터리', 이번 편에서는 카공족과 대형 카페, 그리고 화려한 팝업 스토어가 점령한 도시의 풍경 이면에 숨겨진 현대인의 '공간 빈곤'과 자본주의의 공간 비즈니스를 파헤쳐 봅니다.

1. 커피가 아닌 '체류권'을 렌탈하는 사람들 

과거의 다방이나 카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 위한 '사교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카페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초고속 와이파이가 터지며, 눈치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적당한 백색소음이 존재하는 '쾌적한 환경'을 소비합니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비싼 커피값은 원두의 가치가 아니라, 이 쾌적한 테이블을 몇 시간 동안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체류권' 내지는 '공간 렌탈비'의 성격으로 변모한 것입니다.

2. 집값 폭등이 만들어낸 '공간의 외주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집을 놔두고 굳이 밖으로 나와 돈을 쓰며 공간을 빌릴까요? 그 기저에는 청년 세대의 슬픈 '공간 빈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천문학적으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 속에서, 평범한 청년들이 온전히 소유하거나 임대할 수 있는 공간은 기껏해야 5평 남짓한 좁은 원룸뿐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빨래를 널면 꽉 차버리는 그 비좁은 방 안에는 사색을 즐길 서재나 친구를 초대할 거실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결국 잃어버린 서재와 거실을 밖에서 돈을 주고 빌려 쓰는 현상, 즉 '주거 공간의 외주화'가 대형 카페 열풍의 진짜 얼굴입니다.

3. 화려한 인증샷의 성지, 팝업 스토어 경제학 

이러한 대중의 '공간적 갈증'을 자본주의는 아주 영리하게 파고듭니다. 최근 성수동이나 더현대 같은 핫플레이스를 휩쓸고 있는 '팝업 스토어(Pop-up Store)' 열풍이 대표적입니다. 기업들은 더 이상 물건을 들이밀며 사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수억 원을 들여 며칠 만에 사라지는 놀이공원 같은 화려한 공간을 기획합니다. 좁은 현실의 방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시각적 사치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그 공간에 입장합니다. 그리고 예쁜 인증샷을 찍어 SNS에 자발적으로 퍼 나르며 기업의 가장 훌륭한 무료 광고판이 되어줍니다.

4. 도시를 떠도는 '공간 유목민'의 씁쓸한 자화상 

대형 카페에서 작업을 마치고, 주말에는 예쁜 팝업 스토어에서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꽤 세련된 도시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이 꺼지고 카페가 문을 닫는 밤이 되면, 우리는 결국 다시 좁고 초라한 원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화폐를 지불하고 쾌적함을 아주 잠시 빌려 쓸 수는 있지만, 온전한 나의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영원히 유예되는 삶.

어쩌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하고 화려한 상업 공간들 사이를 정처 없이 떠도는 슬픈 '공간 유목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당신이 머물고 있는 그곳은, 당신이 진짜로 소유한 공간인가요, 아니면 잠시 빌린 공간인가요?